2013 스쿠터 전국일주

[전국일주] 명성황후의 유년기를 볼 수 있는... 명성황후 생가[明成皇后 生家].

apollo695 2014. 6. 18. 22:29

/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


명성황후(明成皇后)께서는

1851년 11월 17일 여주 능현리에서 태어나셨다고,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여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감고당(感古堂)에서 기거하며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16살이던 1866년에 고종의 비(妃)로 간택되시었고,

그후 여러가지 사건으로 대립 중이던

시아버지 대원군(大院君)을 하야시키는 등,

구한말 변화하는 국내외정세에 대응하며 탁월한 정치력을 보였으나,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친러정책을 펴다가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사주를 받은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 당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그 후 일본의 강압으로 폐위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가

1897년에 명성(明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그 해 11월 청량리 밖 홍릉(洪陵)에 안장되었다가

고종이 죽은 뒤 남양주시 홍유릉에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현재의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숙종의 장인이며,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된 건물로

안채만 남았던 것을 1995년, 명성황후생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별당등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생가 주변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비, 명성황후 기념관과 추모비,

명성황후순국숭모비, 감고당 등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 감고당(感古堂)과 명성황후의 생가(明成皇后 生家) 사이에 조성된 민가마을의 풍경을 한 장 담고...


- 명성황후 생가(明成皇后 生家)를 찾았습니다. 마당에서 바라본 행랑채와 대문의 풍경입니다.


- 1995년 동강 권오창 화백이 그렸다는 명성황후 초상.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 어릴적 외갓집이 생각나는 풍경. 초딩 5학년때까지도 호롱불을 켰던...


- 숙종13년(1687)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를 관리하기 위한 묘막으로 지어졌을 당시의 건물 중

  이 안채만 남아있던 것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 별채는 참 소박하게 복원시켜놓았습니다.


- 명성황후의 어린시절, 8세까지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 대문을 나서며 한 장. 사랑채와 너머에 있는 안채에서도 대문이 바라보이는 풍경...


- 명성황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고향집에 세운 비석, 명성황후 탄강구리비(明成皇后誕降舊里碑).

  탄강(誕降)은 왕이나 성인이 태어났음을 일컬고, 구리(舊里)는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인현황후의 아버지로 숙종의 장인이며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인 민유중 묘·신도비(閔維重 墓 神道碑).

  신도비(神道碑)는 묘(墓)로 가는 길목에 세워놓고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합니다.


- 1981년 건청궁 내 동쪽 구릉지에 건립하였으나 건청궁의 복원과 개방으로 인하여

  2007년 10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는 명성황후순국숭모비(明成皇后殉國崇慕碑).


- 기념과 입구에 세워져 있는 명성황후추모비.


-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다는 명성황후기념관(明聖皇后紀念館).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영정, 명성황후의 시해에 관련된 자료들이 있습니다. 내부는 촬영금지라...


- 민치록부부의 소원을 들어주어 명성황후를 낳게 한 바위라고 하여 '소원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바위.


- 숙종의 계비(繼妃)인 인현왕후(1667~1701)가 장희빈의 모함으로 폐위된 뒤 거처했다는 감고당(感古堂).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자리에서가 도봉구 쌍문동 옮긴후 200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였다고...


- 머슴들이 기거하는 행랑채. 머슴들 가옥이 웬만한 사대부집의 안채 같습니다.


- 대문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실내 공간 중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인 안채.

  여성들의 공간으로 조선시대 여성들의 외부출입을 제한하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 많이 더웠던 오후, 마루에 누워 한숨 자고 싶었던 기억이...


- 감고당은 조선시대 중부지방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건축구조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합니다.


- 남자주인과 귀한 손님이 기거하였다는 사랑채. 자녀들의 교육과 사대부들이 모여 토론을 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랑방 문화가 발달했었다고 합니다.

Nikon AF-S 16-85mm F3.5-5.6 G ED V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