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15-10 /
도주관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쓰이던 건물로,
도주(道州)란 고려시대에 사용했던 청도군의 명칭이라고 합니다.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위패(位牌)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拜禮) 하였으며,
양쪽에 동. 서헌의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들리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도주관은 조선초부터 있었으나 서까래 등 목재가 썩어 내리는 등,
노후하고 누추하여 향촌의 선비들이 중수할 것을 바라고 있었는데,
조선 중종36년(1541), 삼족당 김대유(金大有)가,
태수 안태고(安太古)에게 이를 재창해줄 것을 청원하고,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 설계도면을 완성하자,
관찰사인 한사 이청(李淸)의 도움으로 착수하여,
1543년(중종38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산대부 풍기군수 겸 춘추관편수관 이었던 상산 주세붕(周世鵬)이 쓴,
중수기문에 기록되어 있다고...
도주관 입구에 있는 척화비는 고종(高宗) 3년(1866) 병인양요(丙寅洋擾)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른 후,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에 대원군의 명령에 의하여 서울의 종로를 위시하여,
전국주요 도로변에 세웠던 척화비 가운데 하나로,
비문의 전면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의 12자를 새겼고,
옆에는 작은 글씨로『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 새겼는데,
『서양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며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되니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라는 뜻이
라고 하며,
높이 4자5치(155cm), 너비 1자5치(45cm), 두께 8치5푼(25cm) 크기에,
병인년(丙寅年1866년)에 비문을 짓고 신미년(辛未年1871년)에 세운다.
라고 적혀있다고...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있고 난 뒤에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우리나라가 세계 각 국과 교류를 하게되자 대부분 철거되었으나,
도내에는 이 비를 비롯하여 구미 경주 등 4 . 5기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 비도 원래는 도로변에 세웠던 것을 도주관(道州館)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 도주관 정청의 모습입니다.
- 지금은 우객사와 정청만 남아 있다고하는데...
- 좌측에도 객사처럼 방문이 있습니다.
- 한동안 화양면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네요. 요즘도 장작을 사용하나 봅니다. 장작을 보니 옛날 생각이... ^ ^
- 입구에서 담 너머로 바라 본 정청과 객사의 풍경인데... 도주관 너머로 교회가 있고...
- 도주관 입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척화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
Nikon AF-S 16-85mm F3.5-5.6 G ED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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